허벅지 부근까지 얽혀내려오는 길이의 밀갈색 빛의 머리카락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땋여 있다. (3인칭 시점,) 궁도를 했을 때 시야가 방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했던 핀은 더 이상 사용할 필요가 없었기에, 머리에 눌러쓰고 있는 슈크림을 모티브로 한 모자 오른쪽 언저리에 꾹 눌러 꽂아 두었다. 동그란 눈매와 동그란 눈썹을 가진 덕에 처음 보는 이에게도 유순한 인상을 주곤 했고, 녹색의 블라우스와 활동이 편한 타이즈를 받쳐 입었다. 오른 손목에는 늘 실리콘 밴드(여름철 벌레 방지!)를 착용하고 있다.
#긍정적인 #이타적인 #회피하는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한 것! 그것은 바로 웃음입니다! ─ 여전히 입버릇처럼 내뱉는 그 말이 이치에라는 사람을 가장 잘 표현했다. 입가에는 대부분 웃음이 걸려 있고, 과정이 포함된 결과를 (그리고 타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긍정적인 사람.
전체적으로는 여전해 보였다. 타인이 낙담하고 있으면 제일 먼저 다가가 기운을 차리도록 북돋아 주고, 고민이 있어 보인다면 걱정이 앞서 냉큼 그 옆자리에 앉고 보는 사람.
그러나 자세히 보면 무언가 달랐다. 이전에는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행복을 바랐다면… 이제는 스스로가 손해 보면서까지 타인을 위하고 싶어 한다. 타인의 행복에 중점을 둔 탓인지 제 즐거움을 좇으며 욕심을 부리던 것도 많이 덜어내었다. 민폐를 끼칠 것 같으면 뒷걸음질 쳤고, 마주해서 좋을 것 없다 판단되면 도망쳤다. 늘 해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지어 그 경계를 확실히 했다.
기타
00. 稲盛 一笑 | 생일 0505 | B형
미나가와 태생의, 적당히 유복한 정통 과일가게 이나모리 집안의 외동 딸.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재능을 가진 평범한 이치에는… 무려 태어날 때 딱 한 번만 울었다고 한다. 갓난아이 때부터 방글방글 웃는 낯을 보고, 어머니가 ‘첫 번째 웃음’ 이라는 뜻을 담아 이치에(一笑)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이후 시간이 흘러 자라면서도 이치에는 미소를 잃지 않았고, 이치에의 사진첩을 살펴보면 언제나 활짝 웃는 사진만이 기록되어 있었다.
01. 경어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선후배 및 선생님, 심지어 어린아이에게까지 꼬박꼬박 존댓말을 했다. 누가 편하게 말을 놓으라고 하면, 짧게 고민하다 ─이것은 제가 당신을 존중하기 때문에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 계속 쓰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답했던가. 이 정중한 말투는 스물아홉이 되어서도 여전히 유지 중이었다.
02. 연합 훈련 이후
연합 훈련이 마무리된 바로 다음 날, 키리사키 측 코치님에게 퇴부 신청서를 제출했다.
실력이 미흡했기에 하카마를 입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지 못했었는데, 결국은 하카마 한 번을 못 입어보고 궁도부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주변인들에게는 퇴부 사유를 타 동아리에 들었기 때문이라 둘러댔으나, 3학년 2학기는 이치에가 처음으로 귀가부에 속했던 때였다. 어차피 부 활동 시간이 되면 모두는 각자의 부 활동을 하러 향했을 테니, 이를 눈치챈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마주하게 되면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피하느라 바빴고…….
현 대회 결승, 무더웠던 그 날.
그럼에도 경기를 보고 싶긴 했던 건지 꽁꽁 싸매고 등장해 몰래 관중석에 숨어들어서는 마지막 한 발이 쏘아지는 순간까지 지켜보고 갔더란다. 키리사키, 카제마이 고교에 관계없이 과녁을 꿰뚫은 화살에는 ‘명중’을 외치는 것━들키지 않겠다며 둘둘 싸맸으면서,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만 깜빡 잊어버렸는지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할 정도로 목소리를 키웠다.━도 물론 잊지 않았다. 끝내 승리를 거머쥔 제 고교가 자랑스러웠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궁도는 즐거웠으나…. 다시금 자신은 저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치에는 궁도에 ‘불가능’이라는 분류 표를 달았다.
03. 키리사키 고교 졸업 이후
다음 단체전의 순간, 다음 시합에서의 재회, 다음 연습에 대한 교정, 입시가 끝난 다음 겨울방학의 여행, 그리고 그다음, 다음….
연합 훈련에서 맺어진 인연으로 많은 이들과 다음을 기약했음에도 그 무엇 하나 지킨 게 없었다. 봄, 처음 몇 달은 부모님의 과일 가게 일을 돕나 싶더니 이내 마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살갑게 대해주시던 마을 어른들이 종종 가게에 들렀을 때 부모님께 이치에의 소식을 묻곤 했고,
그 질문에 돌아왔던 답은 ‘여행’이었다.
이나모리 이치에는 여행을 떠났다. 한 마디 말도 없이.
모든 연락━심지어 부모님의 것까지━을 끊고는 무작정 발 닿는 대로 향했다. 잘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궁도의 즐거움에 채 마침표를 찍지 못한 탓에 다음으로 즐기고자 하는 것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자신에 대한 고민 겸, 텅 비어버린 것을 채우러 떠난 여행이었다. 물론 얼렁뚱땅 천방지축 단순무식한 면은 크게 개선되지 않아 여행 도중에 대위기가 정말 수도 없이 덮쳐왔었다. 소지품 잃어버리는 것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일어났고… 이상한 걸 주워 먹어 가끔 병원에 실려갔으며…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발 삐끗해 굴러떨어지기도… 숙소 사기도 자주 당해서 길바닥에서 신문지 덮고도 자 봤다….
그리고 여행을 다니는 내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연합 훈련 마지막 날 보았던,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한 불꽃으로 뒤덮인 어둠보다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자신의 현재 위치라든지, 다음 여행 목적지라든지, 제 근황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나…. 반년에 한 번씩, 여행 도중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 한 장을 인화해 부모님께 편지 대신 보내고는 했다. 이나모리 과일 가게 앞에 걸려 있는 작은 코르크 보드, 주황 핀으로 고정시킨 사진━모서리에 검은 마커로 ‘一笑’라고 적혀 있는━이 가끔가다 바뀌었으므로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방황만 5년.
겨울, 정말 다행히도 사지 멀쩡히 미나가와 마을에 돌아왔다. 뭐, 돌아왔다고 먼저 연락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사실 저에 대해서는 다들 이미 잊지 않았으려나 하는 생각이 더 컸다고나 할까? 최소는 10일에서 최대는 6개월 정도밖에 이어지지 않은 연이었으니. 나름 늦게라도 답장은 보내야 예의겠지? 하고 마음먹기도 했었으나 타이밍도 참 도와주지 않아서. 가령… ‘잠깐 보면 안 돼?’ 라는 연락을 받았을 땐 방금 막 비행기에 올라탔다던가. ‘날이 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라는 연락을 받았을 땐 이미 독한 감기에 걸려 반쯤 기절해 있었다거나…. 그러니 이제 와서 뒤늦은 답장을 보낸다 해도 죄다 변명으로만 여겨질 듯했다.
그래도 이 때부턴 여유가 생겼던 것인지 오는 연락은 조금 받았었다. 그야 마을에서 머물고 있는 이들이라면 어김없이 한 번쯤은 오며가며 스쳐지나듯 마주칠 게 분명했으니까….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은 찾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무뎌질 정도로 시간이 흘러서인지 궁도에 관해선 쉼표를 찍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덕에 한 발짝 내디딜 용기가 생겼기 때문에 이치에는 자신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뭐라도 골라보기로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고르는 과정은 제법 합리적이었다. 부모님이 과일 가게를 하고 있다는 점과 자신이 대식가(…)라는 점을 고려해 가볍게 시작했던 파티시에 공부.
재능 있다고 말하긴 어려웠으나 어차피 실패한 디저트 역시 어떻게든 주워 먹을 수 있었으므로 큰 스트레스 받지 않았던 듯하다.
포근포근 달콤하고 둥글둥글 부푸는… 특별한 디저트를 만드는 것은 아니나, 어느 정도 사람이 먹을 만한 정도로 만드는 게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인지 올해 여름, 과일 가게 근처에 파티스리━えがお 에가오━를 오픈했다.
목표는 디저트를 먹는 모두를 웃게 하기!
04. 연락
솔직하게, 이게 무슨 농담인가 싶어 여러 번 되물었다. ━‘…에?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급작스러운 통화가 끊기고 난 뒤에는 망설이다 제 휴대폰의 연락처를 뒤졌고, 10년이나 흘렀음에도 아직 잊혀지지 못한 이름들을 곱씹었다. 그리워하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만. 간다 해도 찰나의 시간 스쳐 지나갔던 자신을 기억이나 할까. 무엇보다 나지막이 먼지 쌓인 이름들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귓가에 파아란 현음이 겹쳐 들렸기 때문에.
다만 뭉게뭉게 피어나는 걱정에 비해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다시 짚어 보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고, 여전히 얼렁뚱땅 천방지축 단순무식이었으므로. …… 저를 기억하는 이 하나도 없다면 그대로 ‘…착각했습니다!’ 외치고 또다시 도망갈 생각으로 부름에 응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05. 그 외
01. 자신을 칭하는 호칭은 와타시(わたし), 타인을 칭할 땐 성을 부른다.
02. 최근의 고민은 여전히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것.
03. 좋아하는 것은 오렌지, 미소, 사람,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에 속하는 일들.
04. 싫어하는 것은 궁도, 눈물, 화… 기타 등등의 부정적인 감정.
05. 손목의 실리콘 밴드는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착용했던 것이다. 부모님께서 행운의 팔찌라고 채워주신 것에 홀라당 속아넘어가 착용하기 시작했는데, 진실을 알게 된 지금까지도 그런 믿음을 가지며 빼먹지 않고 차고 다닌다. 매년 여름마다 새 걸 뜯어 착용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