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의 겨울
Untitled, No. 27
Jeong Yeonchae
정연채
겉치레뿐인 인사 아니었어요?
전신 이미지
27세
153cm, 40kg
음악 평론가
첼리스트
… 또 보자는 거요~. 원래 다 그런 거잖아요. 저만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외관

  • 채도 낮은 갈색 머리카락녹색의 눈동자. 짧아지지 않게 신경 쓴 앞머리, 층을 낸 허쉬컷 헤어스타일.

  • 처진 눈매. 독특하게도 투명한 플라스틱 뿔테 안경을 착용하고 있다. 시력이 좋지 않아 도수가 높다. 라식했다. 콩쿠르에 참가할 때마다 렌즈를 착용하는 게 성가셨기 때문.

  • 크롭 기장의 크림색 아우터, 이너로는 검은 목폴라와 밤색 가디건을 레이어드 했다. 그 밑으로는 흰색 면치마와 검은색 부츠를 착용. 작은 키에 비해 그렇지 않아 보이게… 잘 입는 편.

  • 착용한 액세서리는 귓불의 실버 링 피어싱과 물방울 모양의 실버 목걸이. 예전과는 달리 패션에 신경을 써서 이런저런 액세서리를 다양하게 착용한다. 다만 현악기를 연주하던 습관이 남은 건지, 만은 가벼운 네일이나 실반지 하나 없이 깔끔하다.



성격

#자존심 악센트 #영리함 악센트 #자기모순 악센트

악센트: 악곡의 특정한 자리가 강조되어 어떤 음을 다른 음보다 크고 힘 있게 내는 일.


SUB
한풀 꺾인 기세, 여전히 대담한, 능숙한 거짓말, 강강약약, 주관이 뚜렷한, 제멋대로…….

겉보기에는 크게 다를 바 없이 여전한 모습.


 처진 눈, 꾹 다물린 입, 표정 변화가 크지 않은 낯, 작은 편에 속하는 키. 대개 연채를 처음 마주한 사람들은 다람쥐를 연상하곤 한다. 순할 것이고, 얌전할 것이고… 뭐 그런 틀려먹은 추측도 함께.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 있지 않던가? 옛말에 틀린 게 하나 없다! 고쳐보자면, 정연채는 다람쥐가 아니라… 여전히 치와와다.

 어릴 적부터 독보적인 성격이었다. 제게 심한 장난을 치고 도망가는 아이를 향해 신발을 날려 머리에 맞추고서는, 스트릿 파이터가 되어 놀이터를 뒹굴었던 사건은 아직까지도 어머니가 믿지 못하는 일 중 하나다. 분명 단 한 번도 이런 일에 휘말린 적 없었는데, 언젠가를 기점으로 성격이 180도 바뀌는 바람에 육아 난이도가 수직상승했다고. 본인은 태생부터 이런 성격이었다고 못박았다.

 성인이 되어 드센 성질머리가 조금 누그러지나 했지만 딱히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평론가로서 나섰던 초반,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던 적이 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첼리스트 정연채의 음악은 어떻느냐고. 그러자 연채는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제 스스로 부검을 하란 말씀이세요?’ ……인터뷰하던 둘 사이에 오랫동안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던 사건은 제법 유명하다.

 무재능으로 말미암은 결점을 메우기 위한 발버둥이 곧 ‘노력’이라고. 아직까지도 그리 생각한다. 하지만 초겨울의 촬영에서 맺어진 인연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들이 그리던 미래를 위해 쏟아부은 애정과 시간이 헛되었다고는 감히 결론짓지 못했다.

 무척이나 긴 시간 동안 기울어져 있던 천칭이 그제야 시야에 들어왔다. 혼란스러워지기 전에 생각을 관두고 눈을 돌렸다.



특징

 00. 정연채 鄭曣彩

 생일, 9월 2일

 혈액형, Rh+ B

 가족, 어머니 (첼리스트)


 01. 가족

 쌍둥이 오빠와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까지 함께 있던 가정. 하지만 6세, 성격 차로 인한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어머니와 단둘이 살게 되었다. 부모님이 워낙 유명하신 오케스트라 연주자였기에 결혼 및 이혼 소식이 뉴스로도 짧게 전해졌다고 했다. 오래된 일이고 서로 자주 만나지 않아 이제는 아버지와 쌍둥이에 대한 기억은 남은 게 거의 없다.

 

 02. 초겨울반 촬영, 그 이후

 연채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평소의 행실에 큰 차이는 없었다는 뜻이다. 촬영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2학기 기말에 용케 등수를 유지해 냈다. PD님과 단둘이서 했던 약속이 있었기에 본인은 아쉬운 눈치였지만… 감지덕지라 여기고 훌훌 털어냈다. 2학년이 된 후부터는 필기보다는 실기에 집중했다. …… 그 이전보다는 집중했다. 다시 말하지만, 평소의 행실에서 두드러지는 차이는 없었다. 여전히 소홀했고, 여유 있게 굴었다. 최상위는 아니더라도 상위의 성적을 유지했으며 개인실에서 다인실을 배정받고는 룸메이트들과 원만하게 지내지 못해 한 판 붙었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빛나는 재능에 먼지가 쌓였다 한들 털어내면 되는 일이잖아? 며칠 벼락치기로 구르고 오면 따라잡기 충분했다. 다만 반복 횟수가 늘자 언젠가부터 콩쿠르 직전에는 늘 예민하게 날이 서 있었고, 동아리 선생님께서도 손놀림이 무뎌졌다며 빈번하게 지적했다. 그러나 연채의 연주가 수준급이라는 평가는 변함없었다. 빛바래지 않는 재능은 쉽게 녹슬지 않았기에.

 그렇게 자만하다가 자빠질 거라고 했었나? 너무 확신하는 게 아니냐고 했었나? 헛디디나 했지만 보란 듯이 실기와 필기 모두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머쥐어 서울의 저명한 음대에 합격했다. 약속했던 이에게 가장 먼저 귀띔해 주었다.

 대학 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빠질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연습을 빠졌고, 실력을 과신했다. 그 즈음부터는 연채의 연주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기 시작했다. 이 시점까지 연락을 주고받던 이들은 자신의 졸업 연주회에 초대하기도 했다.


 03. (구) 첼리스트

 커다란 오케스트라 홀, 가장 찬란한 빛. 첼리스트 정연채가 활을 내려놓은 곳.

 대학 학사 과정 졸업 후, 학과장의 추천을 받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에 지원했다. 예상보다 연락이 빠르게 오지는 않았으나 결과는 수석 합격. 스물 넷. 첫 연주회를 앞두고 평소처럼 준비를 마친 연채는 지휘자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당당히 앉아 리허설에 참여했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자가 지휘자와 가까운 배치일수록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첼로 수석이었으니 지당한 일. 그러나 실제로 공연을 보고 온 관객들은 수석이 왜 지휘자와 제일 먼 위치에 자리하고 있냐며 의문을 표했다. 그 연주회가 첼리스트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 공연이었다.

 새하얗게 질린 안색. 오른손에 둘둘 감은 붕대. 첫 공연 일정을 마친 뒤 부주의한 사고로 인해 손을 다쳤다, 고……. 손을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나 아쉽게도 당분간 연주자로서는 뵙지 못할 것 같다는 입장을 밝히고서 한시적인 휴식―혹은 은퇴―을 가지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외부적으로 전해지는 소식은 없었다. 개인적인 연락도 싹 끊었다.


 04. (현) 음악 평론가

 그리고 스물 여섯, 갑작스럽게 불쑥 얼굴을 비추었다. 다쳤다던 손에는 아무런 상처도, 문제도 없는 채로. 다시 활을 잡나 싶었지만 음악 평론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첼리스트를 잠정적으로 은퇴하고 찾은 다른 직업이, 다른 연주자가 자아낸 음률에 점수를 매기는 것이었다니. 주변인들의 감상은 그마저도 정연채답다… 였다.

 날카로운 비평을 자주 쓰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클래식을 들어왔고 직접 연주자로서 연주도 해봤기에 평가에 자비가 없다. 매끄럽지 않은 음을 짚어내는 데에 능숙하고, 특히 첼로 연주에 있어서는 빈틈이 없을 정도로 까탈스럽게 군다. 다양한 곡에 대해 평론을 해야 함이 옳지만 어차피 본인이 잘하는 분야는 클래식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콩쿠르 위주로 골라 평론하곤 한다. 10점을 만점으로…… 여태껏 10점을 준 평은 없다. 그런 연주는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더라.


 05. ETC

♭ 불면증 때문에 한 번에 오래 자지 못하고 두세 시간씩 끊어서 잔다.

♭ 피아노 반주 정도는 칠 줄 안다. 대학 재학 중 사귄 친구에게 배웠다.

♭ 순정만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한 권씩 읽고서 익명으로 어마무시한 길이의 비평을 남기고는 한다.

♭ 축구는 관뒀다. 앉거나 누워서 생활하는 게 주 패턴이었기 때문인지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 바둑을 배워 드디어 할아버지를 한 번 이겼다! 다만 그 뒤로는 잊어버려서 이젠 알까기만 할 줄 안다고.

♭ 스위치를 구매했다. AI와 온갖 게임으로 겨루지만 매번 져서 그런지 바로 집어치운다. 하루 한 판이 최대이므로 중독은 어림도 없다.

♭ 초겨울반 촬영 후 받은 물건, 교환했던 물건들은 죄 모아 여분의 박스에 꽁꽁 보관했다. 버리자니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기에 택한 것.

 실제 연주회가 시작될 때 첼로 수석이 지휘자와 제일 먼 위치에 자리했다던 이야기는…… 사실이 맞다.


 입단을 심사할 때 불호 입장을 밝혔던, 기민한 어떤 지휘자가 리허설 도중 연채의 엉망인 실력을 눈치채고 첼로 배치를 바꾼 것. 첼로 수석이 뒷자리에 앉는다니 말이 안 된다며 따지고 들었으나, 당신에게는 과분한 자리다. 모자란 연주를 기교로 감추는 것만큼 듣기 싫은 음악도 없다. …라고 비난받았을 뿐.

 다친 건 맞는데……. 누가 해코지했다거나, 지휘자와 다퉜다거나 한 건 아니고……. 분에 못 이겨서 첼로 활을 부러트렸다가 사달이 났다. 마침 적당한 명분이 필요했는데 잘 됐다 싶어서 부상을 핑계로 냅다 뛰쳐나간 것. 정말로 손을 못 쓰게 되든 연주에 지장이 생기든 내가 알 게 뭐야! 영영 그만 둘 결심을 하고 나왔으나…… 아직도 첼로가 좋았고, 첼로 수재로서 인정받는 음악이 좋았고…… 첼로 이외의 것은 바라본 적도 없었기에 휴식기 동안 꽤 오래 방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