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고동색의 머리카락과 새까만 색의 커다란 눈동자…
일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추정하는 까닭은, 빼놓지 않고 머리에 뒤집어 쓰고 다니는 크라프트 봉투 때문. 크레용으로 어설프게 웃는 표정을 그려놓고는 매일같이 그걸 쓰고 다녔다. 앞은 보고 다녀야 하니 나름대로 눈 부분에 작게 구멍은 뚫어 둔 모양이었다. 그러나 봉투를 뒤집어 쓰고 나서부터 자주 넘어지는 걸 보면 아닐 수도 있고….
블레이저는 입지 않았다. 셔츠 위에는 두꺼운 노란색 가디건을 걸쳤고, 운동화 대신 반질반질 빛이 나는 까만 구두를 신고 다녔다.
예술과 / 노래
#겁이_많은 #방어적인 #수수께끼?
평소 유에가 웃는지, 우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종종 말을 더듬고, 겁먹은 듯한 행동을 취하기는 했지만….
00. 前森 佑依
생일 0710 | 탄생화 초롱꽃 | 게자리 | A형
가족은 미와츠즈키 마을의 토박이인 어머니와 유에. 어머니는 여전히 마을의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신다. 유에가 중학생 2학년일 무렵,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지, 그 말을 뼈저리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날, 유에는 거의 탈진 직전까지 울다 잠들었고… 이후 유일한 가족으로 남은 어머니의 말이면 어떤 것이든 최대한 따르려고 애썼다.
01. 데뷔
중학생 3학년 초, 어머니께서 권했던 도쿄의 큰 오디션에 나간 적이 있었다. 재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노래를 ‘못’ 부르는 게 아닌 ‘안’ 부르는 것이었으니까. 골랐던 노래는 ‘변하지 않는 것 (變わらないもの)’. 별 생각 없이 도전했던 오디션이었는데, 문제는 결승까지… 그대로 덜컥 합격까지 받아버렸다.
‘크라프트 중학생’ 등의 제목으로 온갖 사이트에 오디션에서 부른 노래 영상이 올라가고, 공유되고… 잠깐 눈을 감았다 뜬 새, 유에는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마을이 좁은 탓에 금방 소문이 퍼졌지만 떠드는 말과는 달리 유에는 조용히 고등학생 3학년이 될 때까지 도쿄로 이사 가지 않고 미와츠즈키 마을에서 오시마이 고등학교를 다녔다.
02. 크라프트 봉투
부모님이 이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유에는 머리에 크라프트 봉투를 뒤집어쓰기 시작했다.
봉투를 쓰기 어려운 상황이면 얼굴을 가리는 것을 찾아 썼다. 주로 대체가 된 것은 골판지 상자나, 인형 탈, 심지어는 주차금지 칼라콘까지도…. 얼굴이 되는 면에 그려 넣는 것은 항상 웃는 얼굴. 들려오는 소리로는, 예전에 누군가 장난을 치며 봉투를 벗기려고 하자… 그 유에가 사람한테 발길질을 했다고 하던가.
03. 취미 & 버릇
04. ETC